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정부 전투 (문단 편집) == 전투 경과 == 이렇게 의정부 북쪽이 유린당하는 동안 육군총참모장 채병덕 소장은 (구)수도사단장 유재흥 준장과 제2사단장 이형근 준장에게 (적에게 탈취된) 동두천과 포천을 탈환할 것을 명령했다. 당시 노도와도 같았던 북한군의 기세를 생각하면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음에도 (구)수도사단은 5개 대대(수습된 1연대 2개 대대, 3연대 2대대, 18연대 2개 대대), 그리고 제2사단은 5연대 2개 대대를 수습해 역습을 준비한다. 6월 26일 새벽 3시 제2사단이 먼저 포천을 향한 공세를 시작하며 축석령의 3연대와 합류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러나 그곳엔 적 전차들만이 기다리고 있어서 쫓기듯 퇴계원 방면으로 후퇴하였고, 뒤이어 16연대 2개 대대가 출동해 지연전을 펼쳤으나 1대대 특공대가 로켓포로 선두 전차를 집중 공격해 진격을 잠시 멈추는 정도에 그쳤다. 한편 (구)수도사단은 오전 8시에 1연대는 동두천, 18연대는 [[양주군]] 신산리를 향해 반격을 시작했고, 1연대는 놀랍게도 동두천-소요산까지 진출하였으나 18연대는 신산리 북동쪽 봉암리 부근에서 적과 접전 중에 와해되었다. 그러나 포천을 맡은 제2사단의 공격이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짐으로써 동두천에 진입한 부대들은 포위될 위기에 처했다. 따라서 이들은 분산·철수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와 같이 다급한 상황에서 의정부 북쪽 금오리에 포진한 육군포병학교 제2교도대대장 김풍익 소령은 제2포대장 장세풍 대위 등과 함께 105mm 곡사포로 북한군의 전차를 공격해 무한궤도를 파괴했으나, 후속 포탄 장전 도중 다른 전차의 공격으로 2포대장, 6번포대원들과 함께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후 오후 1시 북한군 전차대가 의정부 시내에 진입했고, 이 시기 열차로 이동해온 2사단 25연대는 의정부 남쪽 백석천에 방어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 5시 전차 20여대를 앞세운 북한군 행렬을 맞이하나,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하기도 전에 병사들이 멋대로 사격을 하는 바람에 위치가 발각되었고, 북한 전차들은 멀리서부터 국군 진지들을 유린하며 백석교를 건넜다. 한편 백석교 밑에 숨어있던 대전차 분대장은 다섯번째 전차가 교량을 건널 무렵 이를 파괴해 [[길막]]에 성공하나, 후속 전차의 포격에 장렬히 전사하고 만다. 그래도 이로 인해 북한 전차들의 진격로가 막혀, 후속 전차들은 의정부로 되돌아갔고 선두 전차 4대는 16연대 2대대를 상대하고 후속 부대를 기다리다 이날 밤 25연대 11중대 특공대에 의해 2대 가량을 손실한다. 6월 27일 재개된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25연대 장병들이 분투하나, 탄약 부족으로 와해됨으로써 의정부 전투는 막을 내리게 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